아주 부실한데다 부정확한 하이스코어러 열전

2. 비운의 스코어러 RVS-GUN

이름같은건필요없는무명 2022. 5. 4. 08:17

이번 포스팅은 이곳에서 작성한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포스팅이다.

1. 개요

RVS-GUN은 1980년대~1990년대 무렵 오락실에서 활동한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 스코어러이다. 

1969년 출생이며, 본명은 구리모토 다케오(栗本武男), 80~90년대 당시 하이스코어러들 사이에는 RVS-GUN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코어러였다. 하지만 25세가 되었을때 취업과 같은 생계 및 현실과의 문제로 하이스코어와 멀어지게 되었으며 4년뒤인 1998년 5월 3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등진다.

기사에 따르면 그의 기일인 5월 3일에는 아직까지도 그랑 함께 하이스코어를 함께해온 동료 플레이어들이나 라이벌들이 성묘를 하러 GUN의 묘소에 찾아온다고 한다.

2. 생애

학창 시절의 RVS-GUN

1969년에 태어난 RVS-GUN은 어릴 떄부터 게임을 좋아했으며 아케이드, 콘솔, PC게임등의 플랫폼을 다양하게 플레이하였다. 그의 실력은 반을 넘어서 그가 다니고 있는 학교 교내에서도 매우 유명하여 구리모토군은 게임을 잘한다는 이미지까지 확립되어 있을 정도였다.

출처에 있는 기사의 작성자인 RVS-R.Y와는 고등학교때 GUN과 같은 반이었다. R.Y는 '그동안 이 학교에는 나만한 게이머는 없다'고 자부했지만 GUN을 만난 이후 그의 플레이를 본 RVS-R.Y는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치밀하게 계산된 GUN의 공략 기술에 패배감을 맛보았다고.. 그 이후 R.Y는 GUN과 안면을 트며 어울리게 되었고 이후 이 둘은 도쿄 마치다에 있는 오락실(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에 다니게 된다.

도쿄 마치다의 오락실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

GUN이 주로 다니는 오락실은 도쿄도 마치다에 있었던 오락실인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이었다. 원래 마치다는 버추어 파이터 2와 같은 대전격투게임의 성지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원래 마치다의 격투게이머들은 하이스코어러 출신이 대부분이었으며 이전에도 하이스코어 집계점으로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오락실이었다.

GUN은 10대 후반인 1988년부터 스코어로러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공교롭게도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의 이름도 그때부터 알려지게 된다. 동료 스코어러들도 증가하면서 이 오락실 내에서는 스코어 어택 분위기가 고조되어갔다. 당시 RVS-R.Y는 마치다의 점원으로서 매일마다 스코어 어택에 몰두하는 스코어러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오락실은 당시 타이토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인데도 불구하고 오락실의 면적이 10평 남짓한 자그마한 가게였으며 최신 게임도 뒤늦게 입고되으며 또한 요금까지도 1플레이당 100엔이라 당대 기준으로 매우 비싼 요금을 받는등 온통 악조건으로 가득한 오락실이라, 다른 오락실에서 정찰온 스코어러가 '정말로 이런 오락실에서 하이스코어를 냈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하이스코어를 노리기에는 환경이 가혹했다.

하지만 이 오락실에 다니는 하이스코어러들은 이러한 불리한 조건으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도 항상 공략 기술을 연마하여 수많은 기록을 세워나갔으며 GUN또한 이들중 하나였다.

GUN은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의 공략 능력은 스코어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을 정도며 이 소문을 들은 수많은 스코어러들이 10평남짓한 자그마한 오락실에 원정까지 오는 덕분에 그가 플레이할때는 수십명의 갤러리가 생길 정도였다. 이외에도 투극의 핵심 맴버이기도 한 야마기시가 있었는데 RVS-R.Y의 표현을 빌리면 GUN의 매니저와 같은 존재로서 이 때문인지 이 둘은 '다음달은 이 타이틀을 노린다.'와 같이 특정 타이틀의 전일을 노리고선 그를 위한 회의를 자주 했다고 한다.

RVS-R.Y가 회고하길 평소의 그의 태도는 온화하지만 게임 잡지에서 실시하는 하이스코어 집계의 마감일이 가까워지면 아무도 그에게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프랫셔를 느꼈다고 하는데 때로는 스코어 어택을 말아먹었을땐 눈물을 흘리면서 오락실의 게임 케이스를 엄청난 기세로 두들기면서 분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RVS-GUN은 마치 고시엔에서 져버린 고교 야구선수와 같았다고 한다. 이는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거병짓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이스코어에 언제나 진심이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를 들건 간에 오락실측에나 다른 스코어러들에게는 민폐를 끼치는 거병짓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으며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전국 1위를 노려라!

그러던 와중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의 인근에 쟈라코에서 직접 운영하는 오락실인 'YOU & YOU'의 마치다점이 생겼다. 'YOU & YOU 마치다점'은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와 달리 신작 타이틀도 제때 입고되면서 GUN을 포함한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의 스코어러들은 마치 기다린것처럼 'YOU & YOU'에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그동안 이 오락실인 주 고객층을 형성하는 스코어러들이 인근에 있는 오락실로 빠져나가면서 손님이 줄어들고 있던데다 그동안 이 오락실을 주로 다니는 스코어러들은 울며 겨자먹기인 심정으로 다니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오락실이 인근에 개입했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새로이 개업한 'YOU & YOU'로 빠져나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어쨋든 주 고객층이 자꾸 인근에 새로 생긴 오락실로 유출되면서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은 결국 'YOU & YOU'와 합동으로 하이스코어 집계를 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점포명은 キャッスル&YOU2라는 이름으로 개제되었다.) RVS-R.Y의 말에 따르면 이로 인해 마치다의 플레이어들한테는 동기부여와 함께 스코어러의 숫자도 늘면서 두 점포는 하이스코어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GUN은 물론이고 다른 스코어러들은 즉석에서 신작 게임을 할 수 없던것 울분을 'YOU & YOU'에서 풀면서 전일 스코어를 매달마다 뽑아낸걸 볼 땐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의 악조건에 오래전부터 불만이 쌓여져 있었다 보여진다.

어쩃든 그가 정말로 대단했던 점은 이른바 인기가 없는 게임의 전일을 차지하는 등의 틈새시장을 노리지 않고 경쟁률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인기 게임을 택하여 경쟁을 뚫어내면서 전1을 취한다는 점과 그 타이틀이 다수라는 점이다. 게임이 신작이거나 게임의 경쟁률이 높을 경우엔 당연히 양대 매체(게메스트, 베마가)의 하이스코어 집계 코너의 상단에 개제된다. GUN의 기록은 양대 잡지에 걸쳐 통산 95회(게메스트 54회, 베마가 41회)에 걸쳐 개제되는 등 일본 전국에 'RVS-GUN'의 이름을 떨친다. 또한 이러한 그의 활약에 힘입어 집계점인 'キャッスル&YOU2'도 나름대로의 수혜를 보았는데 게메스트 기준 1992년 한해동안 가장 많은 전일 타이틀을 획득한 점포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다수의 전1 타이틀 확보가 곧 오락실의 스펙으로 직결되는 80~90년대 일본 오락실의 시대적인 특성을 보면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RVS-GUN의 활약에 힘입어 ' キャッスル&YOU2'는 1992년 게메스트 대상에서 가장 많은 전1을 배출한 점포로 수상되었다. (게메스트 1993년 2월호)



다시 말해서 'RVS-GUN'이라는 존재 하나로 인해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라는 10평에 불과한 자그마한 오락실이 일본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스코어 집계점중 하나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다.

 현실 생활로 복귀했으나.. 비극적인 말년을 맞이하다

위에서 전술했듯이 RVS-GUN의 이름은 일본 전국의 스코어러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치고 마치다에 있는 작은 오락실인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을 유명한 하이스코어 집계점의 반열에 들게 만들었지만 그러한 그 역시도 점점 나이를 먹고 있었도 취업이나 이러한 문제는 그를 피할 수도 없었다.

그가 25살이 되는 1994년부터 취업을 계기로 생업 문제로 인하여 스코어 어택, 다시 말해 하이스코어와는 선을 그으면서 오락실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에게도 이제 생업이 생겨서 옛날처럼 더 이상 오락실에서 장시간동안 하이스코어에만 몰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이스코어러로서의 생활은 접고 생업에 열중하던 중 1998년 5월 3일,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등지게 된다 항년 29세의 일이다.

그의 묘에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묘석에는 스코어 네임인 'GUN'과 함께 'ありがとう(감사합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의 기일인 5월 3일이 되면 그와 함께 하이스코어 바닥에서 몸을 담아 온 동료 스코어러들, 라이벌들이 그의 묘소에 성묘를 하러 찾아온다고 한다.

3. 평가

어릴때부터 장르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게임을 섭렵했으며 게임 실력도 뛰어나서 그가 학장시절일때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구리모토 군은 게임을 잘한다는 이미지까지 확립되었을 정도이다. 또한 하이스코어러로서의 커리어는 1988년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에 다니면서부터 시작했는데 그의 플레이를 보고자 수많은 스코어러들이 고작 10평 남짓한 작은 오락실에 원정까지 올 정도이며 'RVS-GUN'이 플레이 할때는 수십명의 갤러리까지 와서 관전할 정도였다.

또한 그의 존재 덕분에 고작 10평에 불과한 'プレジャーキャッスル'은 흔한 동네 오락실이 아닌 일본 전국에서 유명한 하이스코어 집계점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1992년 기준 가장 많은 전일을 획득한 오락실의 반열에까지 올릴 정도였다. 또한 인기가 없는 게임의 전일을 노린다는 틈새시장을 노리지 않고 오로지 경쟁률이 높은 인기 게임의 전일을 노리는 정면승부를 주로 해온데다 경쟁을 뚫고 인기 게임의 전일을 많이 획득해왔다는 점도 그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다.

하이스코어판에서는 평이 좋았던 걸로 보이는데 RVS-R.Y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았다고 하며 그 때문인지 그의 기일이 5월 3일이 되면 현재까지도 같은 동료나 경쟁자 할 거 없이 그의 성묘를 다녀오는 스코어러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하이스코어에 몰두한 나머지 게임을 말아먹었을땐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락실의 게임 케이스를 마구잡이로 두들기면서 화를 삭이는 모습은 영략없는 거병짓이다. 우선 오락실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짓은 거병에 해당하는 민폐행위다. 이로 인해서 행여나 고장이라도 나거나 하면 그땐 오락실 측에서 떠안아야 한다.

우선 오락실은 혼자만 이용하는 장소가 아니라 공공의 장소인 만큼 혼자만 게임하는게 아니라 스코어러들도 이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서 하이스코어를 노릴 텐데, 이러한 짓은 당연히 주변의 스코어러들한테 있어서도 게임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

역시사지로 생각해서 다른 스코어러들이 이러한 굉음으로 인해서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게임을 말아먹으면 어쩔텐가? 특히나 게임이 잘 풀려서 경신을 바라보는 중요한 판인데 저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못해서 말아먹으면? 따라서 이와 같은 거병 짓은 비판받아야 할 것이며 게임을 말아먹어서 화가 난것까지는 이해가 가능하나 그 화를 푸는 방식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쨋든 간에 뛰어난 게임 실력을 바탕으로 80~90년대의 하이스코어판을 호령하였으나 뒷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스코어러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