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하이스코어 집계는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1981년에 설립된 '트윈 갤럭시'라는 집계단체로 대표되는 미국, 그리고 과거에 일본에 존재했던 컴퓨터 관련 잡지인 '마이크로컴퓨터 BASIC 매거진', 그리고 아케이드 게임 전문 잡지인 '게메스트', '아르카디아'와 '게메스트'와 '월간 아르카디아'의 집계를 계승한 집계단체인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로 대표되는 일본으로 나눌 수 있다.
하이스코어 문화는 일본 오락실의 고유 문화이지만 하이스코어를 집계한다는 개념은 일본의 고유 문화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북미에서는 1981년에 설립된 트윈 갤럭시가 북미 지역의 오락실을 대상으로 하이스코어 집계를 실시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전국 단위로 하이스코어 집계가 시작된 시기는 컴퓨터 관련 잡지인 '마이크로 BASIC 매거진'이 1983년 후반기부터 일본 전국 단위로 집계를 시작했다.
여기서는 북미와 일본의 하이스코어 집계의 역사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2. 북미 (트윈 갤럭시)
'트윈 갤럭시'는 1981년 11월 10일에, 윌터 데이에 의해 설립된 단체다. 월터 데이는 트윈 갤럭시를 설립하기 전에 4개월동안 100개 이상의 미국 내에 있는 오락실을 방문하여 각 게임마다의 하이스코어를 기록하였다. 11월 10일 윌터 데이는 아이오와주 오톰와에 본인의 오락실을 개업하고 상호를 '트윈 갤럭시'라고 명명하였다. 1982년 2월 9일, 트윈 갤럭시의 기록 데이터베이스가 '트윈 갤럭시 내셔널 스코어보드'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이 무렵 트윈 갤럭시는 최고의 플레이어들의 기록을 집계하는 공식 스코어보드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트윈 갤럭시는 최고의 플레이어들간의 경쟁을 주선하면서 점차적으로 공식적인 스코어보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트윈 갤럭시가 개최한 첫번째 이벤트는 비디오 게임 스타들로 팀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언론들의 관심을 끌었다.
트윈 갤럭시는 1980년대 초, 비디오게임과 관련된 출판물을 지원하면서 공식 스코어보드를 관리하는 단체로서의 지위는 공고해졌다. 1982년 여름부터 비디오 게임 매거진과 조이스틱 매거진은 트윈 갤럭시에서 집계된 데이터베이스를 가져와서 그걸 바탕으로 하이스코어 차트를 발행하였다. 이 하이스코어 차트는 이 잡지들이 존속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출판되었다. 트윈 갤럭시의 하이스코어 차트는 USA투데이(1983년 4월 22일자)에서도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면서 맹위를 떨치던 트윈 갤럭시의 기세는 1988년,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짐에 따라 기네스북이 트윈 갤럭시의 기록을 발표하는걸 중단하면서 점진적으로 시들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미췔과 같은 유명 플레이어들을 배출해 내었다.
트윈 갤럭시의 집계체제의 특징은 무한 루프가 있는 게임이라도 특정 스코어를 넘어서면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10,000,000+α)커트키지 않고 집계를 계속 이어나간다는게 특징이다. 때문에 플레이 시간이 매우 길어진다. 심하면 플레이 시간에만 수십시간 이상이 들어가기도 한다.
3. 일본 (게메스트→월간 아르카디아→일본 하이스코어 협회)
일본의 경우엔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일본 전국에 오락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일본에서 오락실이 일종의 유희 시설로서 정착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열성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아케이드 게임은 하이스코어를 목표로 하는 스코어 어택이 주류였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들은 상위권에 드는 스코어에 이름을 새겨서 리더보드에 등록할 수 있는 네임 엔트리/랭킹 기능을 갖추고 있었으나 전원을 끄면 리셋되어 초기화되는데 여기서 오락실 측에서 하이스코어를 기록하여 점포 내에 게시하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오락실에 드나드는 단골 플레이어들은 서로간에 높은 점수를 뽑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이스코어 문화의 태동이다. 하지만 북미에서는 1981년 트윈 갤럭시가 출범해서 집계하고 있었으나 일본은 북미와는 달리 점포내 집계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지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하이스코어 집계를 실시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최초로 하이스코어 집계를 실시한 잡지는 '월간 TV가이드 비디오 컬렉션'이 최초(A)였다. 하지만 비디오 컬렉션의 집계는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니라 몇몇 점포만 선정하여 집계하기 때문에 '트윈 갤럭시'와 같은 전국 단위의 집계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최초로 전국 규묘로 집계를 시작한건 '어뮤즈먼트 라이프'라는 아케이드 잡지였는데 이 어뮤즈먼트 라이프는 1983년 4월호에서부터 '이달의 하이스코어 고지판(전국판)' 코너를 시작하여 5개 도시 5개 점포를 대상으로 하이스코어 집계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이거 역시 명목상이 전국대상이지 이거 역시 엄밀히 말하면 전국단위의 집계라고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하이스코어 집계가 시작된건 컴퓨터 전문 잡지인 '마이크로컴퓨터 BASIC 매거진'에서 일본 전국 각지의 집계에 협력하는 오락실로부터 하이스코어를 집계하여 순위화하는 '챌런지 하이스코어' 코너를 기획하였으며, 베마가 1984년 1월호에 수록된 별책부록인 '마이콘 슈퍼 소프트 매거진'에(16개 도도부현, 27개 점포에서 집계 개시) 에 첫 집계분이 수록된 것을 기점으로 전국 단위의 하이스코어 경쟁이 시작되어 '전국 1위', 이른바 '전일'를 달성하여 지면에 스코어 네임을 남기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목표가 되면서 플레이어의 스탯으로 자리잡았다.
집계는 1개월 단위로 이뤄지며, 점포에서 찍은 스코어를 출판사에다가 제출하면 전국으로 집계되는데, 여기서 1위에 해당할경우 개제된다. 단 모든 게임이 집계대상은 아니라서 신작 공략에 있어선 어떤 게임이 인기있을지 예측하는것도 매우 중요했다. 한편 규정된 숫자 이상의 점포에서 같은 타이틀의 스코어 신청이 있으면 개제되는것을 이용하여 각지에서 높은 스코어를 찍은 다음 신청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이후 1986년에 창간된 아케이드 전문 잡지인 '게메스트'에서도 하이스코어 집계 코너인 '노려라! 하이스코어!!!'를 신설하면서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또한 게메스트의 하이스코어 집계 역시 베마가와 마찬가지로 전국 단위의 집계였기에 기존에 있는 베마가와 함께 양대 체제를 구축하였다. '전일'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코어러들간에 경쟁을 펼쳤으며 이로 인하여 수많은 유명 스코어러들을 배출해냈으며 일부는 게임 미디어나, 게임 개발에 종사하는 등 게임업계로 유입되는 자들도 생겨났다.
1980년대 중반대, 일본 각 지역의 오락실은 대부분 스코어보드를 설치하고, 해당 가게에서 나온 하이스코어를 스코어보드에 게시하고 있었다. 가게를 돌면서 플레이어가 자신이 있는 게임의 하이스코어보드를 바꿔놓는건 게이머로서의 심리를 자극하는 일이었다. 이를 일본 전국 단위로 확대시킨게 게메스트의 '노려라 하이스코어!!!' 코너와 베마가의 'CHALLENGE HIGH SCORE!' 코너였다. 덕분에 수많은 게임의 전국TOP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점수를 불리는 요점까지도 소개되어 있어 당시 기준으로는 주목도가 매우 높은 코너였다.
게메스트의 경우에는 '너야말로 게메스트!'에 개제된 하이스코어는 이른바 '전일란'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너야말로 게메스트'에 입성하는 플레이어는 '전일' 혹은 '스코어러'라고 일컬어 졌으며, 이러한 '전일란'에 자주 스코어 네임을 올리는 스코어러는 유명 스코어러로서 이름이 알려지며 이외에도 이러한 유명 스코어러들이 다수 소속된 '하이스코어 서클'이나 유명 스코어러들이 모이는 집계점은 이른바 '하이스코어 강호점'이라고 하며 플레이어들 사이에 강한 존재감을 가지게 되며 일부 오락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또한 가게의 이름을 비롯하여 가게가 소재한 도도부현은 물론 가게의 전화번호나 주소까지 기재되어 있어 오락실 주소록으로서의 가치도 높았으며, 이러한 게메스트를 가진 채 멀리 떨어져 있는 가게에 있는 '전일'을 만난다.와 같은 스코어러들끼리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공들여서 만든 스코어 패턴을 도둑맞는것을 경계하여 먼 곳에서 원정을 온 스코어러를 경계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미심쩍은 점수가 보이면 직접 원정을 가서 해당 스코어러를 추궁한 끝에 우소스코어를 적발해내는 사례까지도 있었다.
게메스트의 특징으로는 게메스트만의 독자 기획으로서 '☆'(별)이라고 하는 점포마다 전일 획듯 숫자의 집계도 같이 실시하였으니 여기서 취득한 '☆'의 갯수가 점포의 스펙으로 인지되었으나 한편으론 이 떄문에 경쟁이 과열된 나머지 '우소스코어'를 신청하거나 오락실 점원이나, 단골 플레이어에 의한 프리 플레이가 행해지는 불공정, 지속적인 '☆'획득을 위해서 스코어러에게 '소폭의 스코어 경신'을 요구하는 등의 폐단까지 발생하였다. 때문에 게메스트 말기엔 아예 '☆'의 집계를 폐지시켰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전 격투 게임' 붐이 일어나면서 대인전이 주류로 자리잡는 바람에 하이스코어를 겨루는 게임은 상대적으로 쇠퇴학게 된다. 더군다나 시대가 지날수록 오락실 자체가 쇠퇴하면서 하이스코어 역시 이를 따라 쇠퇴하였으며 베마가는 1999년 3월호를 마지막으로 집계를 아예 전면 중단했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게메스트도 모회사인 신성사의 부도로 1999년에 폐간된다. 이후 월간 아르카디아가 게메스트의 집계를 계승하였으나 월간 아르카디아도 2015년 4월호를 마지막으로 부정기 간행(실절직으론 폐간)하면서 하이스코어 문화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온라인 기능에 대응하는 게임은 온라인으로 자체적으로 집계되나 그렇지 않은 게임들의 스코어는 아예 갈 곳이 없어졌다.
또한 스코어러들 입장에서도 아르카디아의 부정기 간행 소식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리 열심히 플레이해서 높은 점수를 내본들 이를 집계해주는 단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2016년 2월, 아르카디아의 폐간 이후로 단절된 하이스코어 문화의 진흥을 목적으로 한 단체인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가 출범하였는데 일찌기 '게메스트'나 '월간 아르카디아' 편집부에서 근무하던 라이터, 편집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는 과거 게메스트, 월간 아르카디아에서 실시하던 하이스코어 집계를 실시하며, 집계된 스코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의 업무를 진행하는 단체이지만, 현재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는 하이스코어를 집계하는 것 외에는 과거 집계 내역 아카이빙과 같은 업무들은 과거 아르카디아 50호분까지만 아카이빙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아예 내팽겨쳐버렸으며, 멀쩡히 일본 아케이드 시장에다가 정식으로 발매하고 있는 'exA-Arcadia'도 외국 퍼블리셔라는 이유로 차별대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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